내가 좋아하는 인플루언서의 토크 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나도 박사를 받은 지 거의 20여 년이 되어가고, 교수 생활도 30년을 채워가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60~70대를 어떻게 설계하며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박수다 2에 다녀온 뒤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다 보니, 지금 내가 비록 50대 후반의 인생을 살고 있지만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계획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설렘과 기대감은 사회 초년생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정년퇴직을 앞둔 베이비부머 세대에게도 울림을 줄 수 있는 좋은 콘서트와 뒷풀이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특히 놀라웠던 점은 박수다 2에 참여한 인원이 200여 명을 넘었다는 사실입니다. 완전히 성공적인 이벤트였습니다. 고학력 스펙을 갖추고도 취업을 고민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사회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동시에 정년퇴직을 앞둔 ‘고능력 취준생’ 또한 엄청나게 많은 사회가 되었음을 겹쳐 생각해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톡 콘서트 이후 질의응답과 이어진 뒷풀이 시간은 짧았지만, 고학력의 젊은 능력자들과 속깊은 고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뜻깊은 기회였습니다. 그때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후기를 정리해보았습니다.
제목: 내가 세상의 변화에 맞춰 살아가는 힘 vs. 내가 세상의 변화 지점에 서 있을 수 있는 힘

“라떼는 석사만 있어도 교수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원 졸업 후 연구원 생활 2년을 한 이후에 4년제 대학교에 전임으로 갈 수 있었죠. 교직 생활을 30년 했고, 정년을 앞두고 지금은 호주대학에서 겸임교수로 초빙받은 상태입니다."
뒷풀이 자리에서 싸늘한 분위기가 감지되었습니다. 지금과는 취업 형편이 너무 다른 그 때 그 시절의 이야기는, 지금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공감되지 않으며, 오히려 위화감을 조성하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한마디로 운 좋은 시대를 잘 타고난 사람이었네라는 반응이었죠. ‘라떼는 그랬네요.’ 미안한 마음이 듦과 동시에, X세대는 무슨 언어로 이들과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X세대의 경우는 '세상이 요구하는 변화에 맞추려는 노력을 심하게 기울이지 않고 살았다'하고 인정합니다. 그것이 곧 그 시대의 성향이었던 것이죠. 해야 하는 일은 제쳐두고,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인데, 세상이 그 지점으로 끌어당겨 오는 시대에 살았습니다. '운'이 좋았죠. X 세대는 그것을 일찍 경험했던 세대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했고, 그래서 세상이 변화하는 자리에 먼저 서 있을 수 있었고, 세상이 그 자리를 알아보는 것이 세상이 움직이는 이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바꿨죠. 이제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예전같은 메커니즘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투명해졌고 그래서 경쟁이 심해졌습니다. 성취에 대한 선망의 정도도 수치화되었고, 그래서 격차도 더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룰은 더욱 더 급속히 숫자화되고 격차도 더 심하게 효율적으로 인지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이제는 어떻게야 살아야 할까요? 운이 좋았던 X 세대로 박수다에 감히 두 가지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이 제안은 은퇴를 앞둔 X 세대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 될 것입니다.
우선은 ‘팔자가 참 좋았네요!’라고 말하지 맙시다.
이는 해야 하는 일을 하기 위해 하고 싶은 일을 제쳐둔 인생을 산 사람들이 자신에게 내뱉는 ‘공격적인 표현’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미안함을 유도하기 위한 소통의 기술인 것은 알겠지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말은 아니겠죠. X세대 사람들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기 위해서 해야하는 일을 꾸준히 지치지 않고 해야만 하는 시간을 버티고 이겨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예상 밖으로 길~~~었죠.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그 긴 시간을 꾸준하게 버티며, 꼼꼼하게 해야 할 일을 하는 법(삶의 태도)은 박사과정 / 석사과정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석박사 과정의 장점)
생성형 인공지능의 시대에 지식을 배우기 위해 석박사 과정에 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태도는 이 과정을 통해서 앞으로도 계속 연마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둘째는 '운'의 메카니즘을 이해해 봅시다.
'운'이라는 것은 세상의 변화를 끌어당기는 힘이고, 석박사 과정은 꼼꼼하게 디테일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힘을 기르는 과정인 것이고, 이 둘은 다르다는 것이죠. Q & A 세션을 들으면서, 석박사 과정생들 중 일부는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억지로 하고, 그 긴 터널을 지나고 나면 '교수'라는 직업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거야"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구나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다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교수'라는 직군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운'을 이해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석박사 과정 자체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시간을 두고 내가 직접 찾아나서야 하는 부분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창업'과 '기업'을 통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어제 Q & A 세션에 창업과 사업에 대한 질문이 많지 않아서 놀랐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vs. 내가 해야 하는 일, 그리고 '운'을 끌어오기 이런 것을 하기에 '창업'과 '기업'의 경험이 가장 처절하지만 가장 극단적으로 나 자신을 알아볼 수 있는 방편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다음 번 박수다 모임에서는 이런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와 공감대가 더 많이 형성되기를 기대하며...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