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이 필요없는 디자인
설명이 필요없는 디자인

설명이 필요 없이 한눈에 이해되는 디자인이 결국 좋은 디자인일까. 우리는 흔히 그렇게 말한다. 좋은 글이 어렵지 않게 읽히고, 읽는 순간 뜻이 잡히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의 디자인 졸업전시장에는 “설명 없이는 이해가 어려운 작업”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왜 그럴까. 어쩌면 “세상에 없는 무언가를 기획해 만들어야 한다”는 업계의 오래된 기대 때문인지도 모른다. 새로움을 증명하려면 결국 말이 많아진다. 관객이 알아서 이해하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작업자가 계속 설득해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그 모습은 학술대회의 포스터 세션에서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를 방어하고 설득하는 태도와도 꼴이 닮아 있다. 문제는, 연구자가 아닌 디자이너가 그 태도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과연 디자이너로의 성장에 도움이 되느냐는 점이다.

물론 긍정적인 면도 있다. 설명이 많이 필요한 디자인을 하려면 조사와 자료 정리, 인사이트 도출, 논리의 조직화 같은 지루하고 끝이 바로 안보이는 인고의 시간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고, 생각을 놓지 않은 채 끝까지 밀어붙이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디자이너는 치열하고 끈질기게 사고하는 법을 경험한다. 스스로의 허점을 발견하고,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고, 논리의 근육을 단련한다. 결과의 끝자락에 항상 새로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세상을 이해하는 사고의 틀을 얻게 되는 경우도 많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디자이너에게 새로움이 없다는 것은 생소하고 불안하기 그지 없는 경험이다. 하지만, 그러한 훈련의 결과물을 졸업전시장에서 세상에 내놓는 일에는 분명 의미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전시장이라는 무대에서 곧장 작업자의 노력이 성과로 보상되지는 않는다. 처음 경험하는 학술 연구적 프로세스의 결과물은 허점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졸업전시장에서 학생들이 느끼는 감정은 종종 비슷하다. 혼란스럽고, 자책하고, 실망한다. 오랜 기간 준비한 결과물에 대한 평가는 날카로울 수밖에 없는데, 그 비평을 작품의 문제로 받기보다 자신의 역량 전체에 대한 판정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럼에도 그 비평과 지적은 ‘디자이너-연구자’로 성장하기 위한 과정의 비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처럼 말이다. 그런 비평적 환경을 몸으로 겪어봐야 이후에 마주할 세계를 이해하게 된다. 평가가 너무 견디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연구자적 길을 일찍 접는 선택도 가능하다. 반대로, 그 평가 자체를 흥미로운 대화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전시 결과물에 대한 노출 자체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처럼 몸에 각인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앞으로도 치열한 사고가 필요한 자리에서, 치열한 사고의 프로세스를 실제로 수행할 가능성이 크다. ‘나이듦을 대비한 디자인’,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한 디자인’처럼 복잡한 문제를 다루는 영역에서 그런 역량은 더 분명하게 요구된다.

그렇다면 반대로, 설명이 거의 필요 없고 일반인도 바로 이해하는 디자인을 추구하는 학생들의 요구가 더 많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디자이너 모두가 학술연구에서 기대하는 수준의 연구자가 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혹은 디자이너에게는 디자이너 나름의 연구 방식이 있고, 그 연구는 때로 학술연구에서 요구하는 사고 프로세스와 결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컨대 하라켄야의 Unknown 시리즈 역시 디자인 연구의 한 형태다. 그는 기존의 사고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사고 실험을 꾸준히 반복했고, 그 결과를 디자인 연구의 성과로 제시해왔다. 이런 접근은 학술연구에서 흔히 말하는 ‘문제 정의 - 문제를 기반으로 한 해결 제안'과는 다른 층위에서, ‘사고의 틀을 흔들고 새 틀을 제안하는 것’에 가깝다. 전혀 새로운 접근인 것이다. 그는 이런 사고 구조를 통해 디자인 연구의 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 자체를 연구 프로세스로 삼았다.

그 결과물은 대체로 직관적이다. 별도의 설명이 없이도, 아~하! 하고 수긍하게 만들고, 곧이어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지?" 라는 감탄을 불러온다. 이런 디자인도 디자인 연구의 한 방향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학생들 사이에서 점점 확산되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교육 현장에서도, 설명이 거의 필요 없고 일반인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디자인에 대한 요구가 더 자주 언급되는 것일 것이다. 

디자인은 결국 쉬워야 한다. 디자인의 속성상 그렇다. 쉽게, 직관적으로 이해되어야 비로소 디자인으로 작동한다. 다만, 그것이 디자인하는 과정까지 쉬워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강의 소설이 쉽게 읽히지만, 그 창작 과정 자체가 쉽지는 않았을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오히려 그 과정은 충분히 복잡하고, 치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기록가능해야 하며, 실제로 기록되어야 의미가 있다.  

작성일: 2025-12-20 | 카테고리: Daily Tweet | 방문자수: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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