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잔에서 시작된 하루
2025년 1월 31일 울산으로 출발하다.
2025년 2월 1일 토요일 아침 10시, 부산에서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모모스커피 온천장역 본점. 커피 애호가라면 꼭 들러야 할 이곳은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이 운영하는 곳으로, 고유한 지역 전통이 살아있는 공간에 현대적인 커피음료 서비스가 결합된 이색미가 넘치는 곳이었다. 바리스타가 직접 핸드드립해준 스페셜티 커피 한 잔을 음미하며, 매장에서 직접 구운 에그타르트와 함께 부산에서의 하루를 여유라는 키워드와 함께 천천히 열었다. 비는 주척주척내리고 있었기에 이 카페를 나와서도 특별히 어디를 가야할 지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냥 따뜻한 공간과 달달한 디저트가 좋았을 뿐.
오늘 하루 부산은 비가 너무 많이 내린다. 커피 한 잔의 여운을 안고 길을 나섰으나 내리는 비에 온 몸이 으슬거리기 시작했다. 따스하게 친구를 기다릴 곳이 필요했던 나는 온천장역 주변의 허심청이란 대온천탕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즐겨찾던 대중 목욕탕이었는 데, 부산에 와서 대목욕탕을 가게 될 줄은 정말 몰랐지만, 특별히 주변에 가볼 곳이 마땅치 않았던 터라 천천히 이동하여 도착했다. 허심청은 부산에서 가장 큰 온천탕이라고 광고하고 있었다. 사람은 역시나 많았고, 대온천탕 내부는 기대 이상으로 컸다. 천정이 아주 높아서 노천 목욕탕에 온 느낌이 들 정도였다. 탕의 종류가 다양한 것이 마음에 들었는 데, 온탕, 열탕을 지나 TV를 볼 수 있는 영상탕, 철학을 논할 수 있는 철학탕, 반신욕을 즐길 수 있는 반신욕탕 등 너무나도 이색적인 이름의 탕들이 이번 부산 여행의 재미를 더했다. 역시 비에 젖은 몸을 녹이기에는 따뜻한 탕만한 것이 없었다. 따뜻한 물에 얼은 몸을 녹이고 나니 마음도 한결 개운해졌다.
온천탕을 나오는 길에 지인과 전화통화가 되어, 부산에서 정말 유명한 국수집을 함께 방문했다. 비오는 풍경 속에 국물 맛이 끝내주는 유명한 멸치국수집에서 쫄깃한 면발을 느끼며 로컬 부산인의 입 맛과 공감하고는, 관광지 음식과는 차원이 다른 찐한 서민들의 맛과 정서에 잠시 동화되는 시간을 가졌다. 국수집 이름은 구포촌국수, 부산 금정구 금샘로 490이 주소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 부산의 대표적인 카페 거리인 전포 카페거리로 향했다. 비는 멈추지 않았지만 개성 넘치는 카페들이 가득한 이곳은 걷기만 해도 즐거웠다.
특히 중간에 들어간 빈티지샵에서 90년대 안경테를 구매하고, 몇 군데를 더 둘러보다 마음에 드는 카페에 들어가 과일 블렌더 쥬스를 한 잔 했다. 그 후, 전포역에서 서면역까지 걸어가며 젊은이의 거리를 신기한 눈으로훑었다. 서면 롯데백화점을 중심으로 서면 돼지 국밥거리, 빈티지 카페 등 이색적이지만 로컬인의 시선에서 부산의 찐 모습을 즐길 수 있었다.
저녁으로는 부산 개금 시장의 원조 개금 밀면을 먹으러 갔다. 시장통 입구에 위치한 가게 입구와 세련된 간판으로 맛집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주문을 기다리는 동안 셀프로 챙겨 온 육수 한 모금은 진한 감칠맛이 퍼지면서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드디어 나온 물밀면은 새콤달콤한 육수와 쫄깃한 면발이 어우러져 입안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한입 먹자마자 ‘이게 바로 부산 밀면이구나!’ 싶었다. 반면 비빔밀면은 양념이 강렬한 맛을 내며 혀를 자극했는데, 나에게는 다소 매웠지만 씹을수록 중독성 있는 감칠맛이 느껴졌다. 개금 시장에서 맛본 밀면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부산의 오랜 전통이 담긴 맛 그 자체였다.
부산에서의 하루는 커피 한 잔으로 시작해 온천과 맛있는 음식, 쇼핑과 레트로 감성이 어우러진 여정으로 마무리되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 속에서도 여전히 부산만의 매력이 살아 있음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