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쨰 퍼즐: 빈 공예 공방 (Wiener Werkstätte)는 190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설립된 예술가, 디자이너, 장인들의 협업 단체로, 실용적인 예술품을 제작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주요 멤버로는 Josef Hoffmann, Koloman Moser, Fritz Waerndorfer 등이 있다.

이 공방에서의 작업물은 단순하게 예쁘게만 디자인한 것이 아니라 디자인의 시대정신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대정신이란 것은 바로 빈분리파 전시관에 새겨있는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그 예술의 자유를.” 이란 문구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요제프 호프만(Josef Hoffmann)은 “삶의 모든 요소에 예술을 스며들게 하자”는 신념으로, 가구·조명·식기·인테리어까지 총체적으로 디자인한 인물이다. 레오폴드 뮤지엄에서 빈 공예 공방에서 만든 작업물을 살펴볼 수 있는 데, 그 규모가 엄청나다. 또한 20세기초 일상용품의 조형적 특성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미술관에는 요제프 호프만의 작업실을 그대로 재현한 공간도 볼 수 있는 데, 왼쪽 수납장은 그의 디자인 철학을 반영하여 이 작업실에 들어오는 모든 클라이언트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 디자인했고, 오른쪽의 소파는 그가 클라이언트를 접견할 때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 작업실의 구성과 입구에 있는 수납장의 역할을 보면서,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는 디자인 에이전시의 초기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그리고 그 모습이 크게 변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서 그에게 디자인 에이전시의 시초 (효시)라는 타이틀을 붙여주고 싶었다.
그가 다양한 클라이언트를 조형적으로 감동시키면서 그의 디자인 철학을 클라이언트의 요청작업에 구현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까? 그리고 그가 디자인으로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태도가 지금까지 이어지며 디자인 산업 생태계의 전형적인 모습을 만든 것에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디자이너라면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그 예술의 자유를.” 이란 빈분리파의 시대정신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삶의 모든 요소에 예술을 스며들게 하자”는 신념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명확한 철학과 비전을 바탕으로 공간 내에서의 조형적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오늘날 브랜드 디자이너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있다.



이 의자들은 너무나도 아름답지 않은가!!
그런데 빈 공예운동을 통해서 생산된 제품들은 나무 소재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 싼 제품은 아니었다. 대량생산을 염두에 두고 만든 제품도 아닌 듯 하다. 여기서 같은 시기에 등장했던 바우하우스와는 큰 차별점을 알 수가 있는 데, 아래 chatGPT가 정리해 놓았듯이, 비엔나 공예학교와 바우하우스는 미학적 성향과 교육방식에 있어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같은 유럽 심지어 지리적으로 가깝게 있었지만, 두 기관이 디자인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달랐던 것은 주목할만한 점이다. 예술과 산업의 기술적 통합을 목표로 삼았던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철학은 폐교이후에 미국으로 건너가 산업 생산 디자인의 꽃을 피우게 된다. 반면에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남아있던 빈 예술공예학교의 교육 철학은 세계적으로 크게 전파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소품종 다량생산의 시대, 예술과 생활의 미적 통합이 중요한 시대에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철학과 함께 오스트리아 빈 분리파의 디자인 철학을 살펴보는 것은 현대 디자인 산업계의 동향을 이해하는 데도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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